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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정치인, 밤에는 덴데라

분류없음 2012/01/26 09:37 posted by ㅈㅇ
이번 주말만 달리면 밤의 일감은 끝날(끝나야 할) 텐데, 그토록 원하던 여유 시간이 생길 예정임에도 왠지 불안하다. 이력서를 열심히 써서 밤일-.- 거래처를 확보해야 할 듯... 그 전에 가이코 다케시 책 검토도 해야 할 테고.
일도 일이지만 사놓은 책도 읽고 공부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뭘 우선해야 할까? 다 해야겠지. ㅠㅠ 하지만 할일이 많다고 생각될 때일수록 탈출 욕구가 부풀어오른다. 이 고질적인 탈출 욕구와 시간 계산의 서투름과는 평생 어르고 달래며 같이 살아야 할 것 같다.
기분이 꽤 나아져서 오늘은 무라시타 고조를 들으려고 했는데 이어폰이 드디어 단선됐다. 고양이 때문에 잠시라도 서랍 밖에 꺼내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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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즐기는 매체

분류없음 2012/01/16 09:56 posted by ㅈㅇ
우울하면 우울할수록 현실과 더 거리를 둔다. 디폴트가 살짝 우울을 베이스로 살짝 들뜸을 간혹 넘나드는 상태라 기본적으로 늘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다. 거리를 둘 힘도 없을 만큼 강렬한 정신적 고통이 찾아오면 팽팽히 당긴 고무줄을 확 놓듯 현실로 돌아가버린다.
최근 디폴트 상황에서 듣는 출퇴근 BGM은 모리타 도지. 요 며칠 갑자기 우울하다가 오늘 아침 선택한 출근 BGM은 다니야마 히로코. (<이미나시 아리스>!) 주말에 본 픽션은 웹툰 <커피우유신화>였다.
이렇게 현실과 천천히 멀어지는 우울함과는 별개로, 엄청난 괴로움이 팡 터지면 매체와 현실을 겹치려는 마음이 폭발하면서 럼블피쉬의 <으라차차> 따위를 듣게 된다(약 4년 전 기록).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돌이켜보면 창피해진다.
거리를 유지할 힘이 있다는 건 참을 만한 괴로움이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

이하 <이미나시 아리스> 가사.
'기노코토 네테미타(버섯과 자보았다)' 부분에서 귀를 의심했었다. 야한 노래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면 '이모무시(애벌레)'도...
이른바 촉수물 따위를 좋아해본 역사가 없었는데, 소녀는 남자와 있을 때보다 기괴한 생물과 있을 때 때로 더 야하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
후반의 반전이 인상적인 것은 물론, 마지막에 '소레와 젠젠~'이 '다메다 젠젠~'으로 바뀌는 부분도 귀에 남는다.

きのこの上の芋虫は  寂しさを教える教授だった
「それじゃ始めるよ」と言い残して
芋虫はどこかへ行ってしまった
もう二度と帰らない  きのこだけ残った

アリスは其処で待っていた  2時間2ヶ月2100万年
それでも芋虫は帰らない  どうして良いのか分からなくなって
アリスはためしに  きのこと寝てみた

それは全然 意味が無いアリス
何をやってるのかわからない
まるで全然意味が無いアリス
意味が無いアリスが其処に居る

公爵夫人は分からない  何を言われても分からない
足し算と引き算と割り算と
チェシャ猫とカボチャの見分け方は
何とかなるけど  それだけじゃしょうがない

何しろ何にも聞いてない  そもそも興味を持っていない
頭にきたよもうアリスは  公爵夫人の頭を持って
鍋にぶち込んで  きのこと煮てみた

それは全然  意味が無いアリス
耳の無い兎が言いました
まるで全然意味が無いアリス
意味がないアリスがくしゃみした

きのこの上に陽が当たる  2100万年の陽が当たる
いつまでもアリスは待っている
何時までも待ってる石になって
苔むしたアリスの  上にも陽が当たる

というのは実は言いすぎで  そんなに大した話じゃない
ホントのアリスはアパートで  伸びすぎた足の爪を切ってる
何も無い暮らしに  うんざりしてただけ

駄目だ全然  意味が無いアリス
何をやっているのか分からない
まるで全然  意味が無いアリス
意味が無いアリスが其処に居る

駄目だ全然  意味が無いアリス
2100万年座ったきり
まるで全然  意味が無いアリス
意味がないアリスは動か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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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코, 향상심

분류없음 2011/12/07 21:55 posted by ㅈㅇ
* 카네코

카네코에게 메일이 왔다. 3월 말인가 4월 초쯤에 채팅을 했을 거다. 그 이후 처음이다. 카네코와 연락이 닿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레서 잠이 안 올 정도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착하다든가, 똑똑하다든가, 나를 좋아해준다든가, 그런 분명하고 단순한 이유뿐이 아니다. 카네코를 볼 때 나는 내가 '리무상'이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를 '임정은' 아닌 '리무상'으로 처음 만난 사람, '리무상'이었던 내 삶을 육안으로 본 사람, 그리고 지금도 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사람은 카네코밖에 없다. 일본에 살았던 시절이 꿈만 같이 느껴지는 지금, 카네코의 존재는 그 꿈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리무상'은 멘탈이 불안했다. 실수도 많았고 외로운 나머지 이 말 저 말 떠벌리다 치부를 온통 드러내기도 했다. 카네코는 그 '리무상'을 내가 완전히 부정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 '리무상'과 친구로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리무상'이 아주 글러먹은 인간만은 아니었던 것일 테니까. 개인보다 현상과 사건에 관심이 많은 카네코인 만큼 '리무상'의 사생활을 일일이 눈여겨보고 문제 삼지 않았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든 간에 카네코는 '리무상'을, 내 일본에서의 1년을 구원하는 존재다.

* 향상심

퇴근하다 보면 종종 사회에 혼자 선 두려움이 별안간 엄습한다. 학교에 다닐 땐 성적표와 선생님이 나를 드러내 평가했지만, 사회에서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드러내지 않고 평가한다.
내가 나날이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을 학창 시절엔 쉽게 얻었다. 수리영역 점수가 80점대에서 90점대로 오르면 문제집을 푼 며칠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숙제를 할 때 친구들은 내게 곧잘 답을 물어보았고, 가르쳐주고 나면 뿌듯한 마음이 오래도록 갔다.
회사는 성적표를 주지 않는다. 잘해도 뭘 어떻게 잘했는지 아무도 일일이 짚어 말해주지 않고, 못해도 뭘 어떻게 못했고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해야 한다. 늘 긴장해야 하고 눈치를 끊임없이 발휘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나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못하고, 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불안한 형편이다.
바깥에서 확신을 얻지 못한다면 스스로 자신에게 확신을 줄 수밖에 없다. 확신을 쌓으려면 내 안에 생기고 자란 내용물을 머릿속에만 두지 말고 꺼내 표현해야 한다. 내 수준을 가장 또렷이 알 수 있는 표현 수단은 글인 것 같다. 형태가 적나라하게 남고 고스란히 유지되는 글을 썼을 때, 내가 지금 '어느 정도'인지가 무서울 만큼 극명하게 나타난다.
학창 시절에는 잘 그리지 못했던 만화 캐릭터의 어려운 포즈를 그리는 데 성공하고 신이 난 적도 많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자꾸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잘 그리게 된다. 배우고 생각한 것을 자꾸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 더 빨리 배우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하는 나를 대면할 수 있지 않을까... '다들 고만고만해, 중요한 건 어디서 어떻게 훈련받느냐지'란 니쿠사마의 말이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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