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네코
카네코에게 메일이 왔다. 3월 말인가 4월 초쯤에 채팅을 했을 거다. 그 이후 처음이다. 카네코와 연락이 닿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레서 잠이 안 올 정도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착하다든가, 똑똑하다든가, 나를 좋아해준다든가, 그런 분명하고 단순한 이유뿐이 아니다. 카네코를 볼 때 나는 내가 '리무상'이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를 '임정은' 아닌 '리무상'으로 처음 만난 사람, '리무상'이었던 내 삶을 육안으로 본 사람, 그리고 지금도 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사람은 카네코밖에 없다. 일본에 살았던 시절이 꿈만 같이 느껴지는 지금, 카네코의 존재는 그 꿈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리무상'은 멘탈이 불안했다. 실수도 많았고 외로운 나머지 이 말 저 말 떠벌리다 치부를 온통 드러내기도 했다. 카네코는 그 '리무상'을 내가 완전히 부정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 '리무상'과 친구로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리무상'이 아주 글러먹은 인간만은 아니었던 것일 테니까. 개인보다 현상과 사건에 관심이 많은 카네코인 만큼 '리무상'의 사생활을 일일이 눈여겨보고 문제 삼지 않았을 뿐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든 간에 카네코는 '리무상'을, 내 일본에서의 1년을 구원하는 존재다.
* 향상심
퇴근하다 보면 종종 사회에 혼자 선 두려움이 별안간 엄습한다. 학교에 다닐 땐 성적표와 선생님이 나를 드러내 평가했지만, 사회에서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드러내지 않고 평가한다.
내가 나날이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을 학창 시절엔 쉽게 얻었다. 수리영역 점수가 80점대에서 90점대로 오르면 문제집을 푼 며칠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숙제를 할 때 친구들은 내게 곧잘 답을 물어보았고, 가르쳐주고 나면 뿌듯한 마음이 오래도록 갔다.
회사는 성적표를 주지 않는다. 잘해도 뭘 어떻게 잘했는지 아무도 일일이 짚어 말해주지 않고, 못해도 뭘 어떻게 못했고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해야 한다. 늘 긴장해야 하고 눈치를 끊임없이 발휘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나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못하고, 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불안한 형편이다.
바깥에서 확신을 얻지 못한다면 스스로 자신에게 확신을 줄 수밖에 없다. 확신을 쌓으려면 내 안에 생기고 자란 내용물을 머릿속에만 두지 말고 꺼내 표현해야 한다. 내 수준을 가장 또렷이 알 수 있는 표현 수단은 글인 것 같다. 형태가 적나라하게 남고 고스란히 유지되는 글을 썼을 때, 내가 지금 '어느 정도'인지가 무서울 만큼 극명하게 나타난다.
학창 시절에는 잘 그리지 못했던 만화 캐릭터의 어려운 포즈를 그리는 데 성공하고 신이 난 적도 많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자꾸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잘 그리게 된다. 배우고 생각한 것을 자꾸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 더 빨리 배우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하는 나를 대면할 수 있지 않을까... '다들 고만고만해, 중요한 건 어디서 어떻게 훈련받느냐지'란 니쿠사마의 말이 위안이다.